*감상과 책 소개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전문이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제목: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저자: 이꽃님
출판사: 문학동네
발행일: 2018-02-09
*2024 3월 20일 기준 베스트셀러
*발행 직후부터 부단히 읽히며 청소년 문학계의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 너희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그저 아빠일 뿐이지.
- 내가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큰 세계가 쿵쿵대며 다가오는 것 같아.
- 청소년 소설을 읽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여름이었다. 나는 청소년 소설을 '성장 소설'이라 부르기를 더 좋아하는데, 지나간 나의 시간을 쓸어보기도 하고, 다가올 우리 아이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마주하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를 비추어보기도 하면서 어딘가 우리를 채워주고, 어느새 조금은 자라게 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알라딘 독자 리뷰 中)
감상
: 타인의 세계에 대한 소상한 관찰록
'부모와의 관계 재정립' 이야기는 청소년 문학 작품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10대가 자신의 낯선 세계를 발견하고 나서, 가장 먼저 자신과 분리해 내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10대는 부모와의 관계나 가족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은유는 아빠와의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물입니다. 은유는 아빠가 자신에게 있는 유일한 가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들을 무시해 왔다고 느낍니다. "내가 봤을 때 너는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어. 최소한 평범한 가족이라는 게 있잖아... 우리 아빠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아빤 그냥 내 옆에서 '존재'만 하는 거야."(47p)
그러나 우리는 또 한 명, 가족의 울타리 바깥에서 배회하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은유의 아빠는 딸의 탄생과 엄마의 죽음을 동시에 목격한 인물입니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은 은유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은유에게 한없이 무관심해 보였던 아빠도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엇갈리는 은유와 아빠를 이어주는 것은 과거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편지는 아빠의 과거를 조명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은유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직접 아빠와 엄마의 과거 모습을 찾아내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은유가 알 수 없었던, 발견하지 못했던 아빠의 세계를 비로소 들여다보는 순간입니다.
소설은 타인에 대한 소상한 관찰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유와 아빠가 같은 이해에 이를 수 있던 이유는 다름 아닌 편지로부터 아빠가 살아온 세계를 듣고, 관찰한 데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은유가 쓴 편지는 은유의 세계를, 과거로부터 온 편지는 아빠의 세계를 기록하는 관찰록이며, 두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기능합니다.
은유는 이 편지를 통해 복권을 사거나 학력고사의 답지를 알려주는 것 같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말합니다. 은유는 자신이 말한 대로 과거의 은유에게 학력고사 기출문제를 부치기도 하죠. 그러나 결말부에 이르러 이 '엄청난 일'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납니다. 편지는 아빠와 엄마의 인연을 맺어주었고, 은유로 하여금 아빠라는 타인과 가족이라는 세계를 받아들이도록 도왔습니다.
작 중에 언급되었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이런 은유의 변화를 잘 나타내 줍니다. 우리는 다음 은유의 말에서 은유가 진정으로 바랬던 것이 로또나 가출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읽는 능력' 모티프는 이후 이꽃님 작가의 또 다른 소설『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에 쓰이기도 했습니다.)
"언니. 사람들 속마음을 다 열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리잔에 있는 물처럼 그렇게 훤히 보이면. 그러면 아빠랑 나도 조금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오해하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고,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 겁먹지도 않을 텐데."(193p)
본 작품에서 쓰인 '세계'는 은유가 오가는 과거와 현재 같은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는 이야기 전부가 현재와 과거의 은유가 나눈 편지로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대를 건너 향하는 대상은 바로 과거의 은유 혹은 현재의 은유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가 띠는 성장 서사를 고려한다면 '세계'를 인간의 삶을 빗댄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라는 제목이 은유가 고집스러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아빠에 대한 이해에 다다른 이야기 전체를 빗대고 있는 셈입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그 제목처럼, 때로는 자신의 세계를 넘어 다른 이의 세계로 건너가 이해와 공감의 다리를 놓는 것이 우리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방법임을 얘기해 줍니다. 혹자는 청소년 문학의 유용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청소년 문학을 읽음으로써 청소년들의 자신에 대한 앎(self-knowledge), 타자에 대한 앎, 그리고 세계에 대한 앎을 촉진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욕구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얻게 된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청소년 문학으로서 그러한 여정의 첫걸음을 내딛게 해주고 있습니다.
책 소개
1. 내용 / 형식
두 명의 ‘은유’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가족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것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주인공인 은유는 자신의 가족에 항상 불만이 가득한 열여섯 살 소녀다. 자신의 탄생과 함께 세상을 떠난 엄마, 자신에게는 관심도 없는 아빠. 은유에게 가족은 그야말로 타인보다 먼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의 갑작스러운 재혼 소식을 듣고 화가 폭발한 은유는 은밀한 가출을 결심하고, 다른 시대의 은유에게 온 하나의 편지를 시작으로 베일에 감춰져 있던 엄마의 비밀을 하나씩 파해치게 된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자신을 떠나 타인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소녀의 분투 이야기다.
서간집 형식의 소설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따뜻한 고찰이 담긴 이야기이고, 두 인물의 심리 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편지 형식이 독자와 등장인물 간의 거리를 좁혀서 결말부의 감동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전형적인 부녀갈등 서사를 띠고, 사춘기를 겪는 인물의 심리가 직접적이고 뚜렷하게 드러난다.
핵심 소재는 ‘가족’과 편지를 통한 ‘타입슬립’이다. 서로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 시간을 건너뛰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설정이다. 이런 설정 자체는 이미 숱한 미디어 상품에서 사용해 온 클리셰에 가깝다. 두 가지 소재가 함께 쓰인 작품은 도처의 영상 매체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의 인생 영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바웃 타임>도 가족과 타입 슬립을 소재로 한 성장 영화다. ‘편지’와 ‘타입 슬립’이 함께 사용된 작품이라면 2000년에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은 국내 영화 <시월애> 정도가 쉽게 떠오른다.
십 대의 미성숙함과 성장을 주소재로 삼고 있다는 면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완득이> 같은 10대 소설과도 괘를 같이한다. 세 소설 모두 10대를 둘러싼 불안과 고통의 세계를 그렸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샐린저의 손에서 탄생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십 대의 불안을 상징하는 인물로 회자되곤 한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익숙한 소재를 완성도 있는 짜임새, 섬세한 표현으로 엮여내면서 오랜 시간 동안 가족과 청소년에게 감동을 주는 데 성공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 출판사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소설로도 영화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왔지만, 이 작품의 고유한 힘, 소중한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이 힘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보도자료에 적어두었다.
결말부의 반전으로 감동을 꾀했다는 점도 차별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은유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탓에 독자는 벌어진 상황의 일면만을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 은유가 잘 알지 못하는 사실들, 예컨대 아빠나 또 다른 은유의 비밀들은 모두 베일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이런 진행 방식은 작가가 의도한 결말부의 반전이나 감동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다.
02. 표지 디자인 / 내지 편집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일러스트가 앞뒤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두 명의 은유로 보이는 소녀들이 부분코팅된 채 책의 중심부에 앉아있다. 뒤표지에는 뭔가 아련한 느낌의 본문이 인쇄되어 있다. 또 문학동네의 문학상을 수상한 만큼 심사위원들의 추천사를 잊지 않았다.
내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목차다. 소제목이 두 페이지 빼곡히 쓰여있다. 두 온유가 서로에게 보낸 편지의 첫머리를 목차로 차용한 것이다. 독자가 두 명의 편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과몰입하게) 해주는 센스가 엿보인다. 내지는 두 명의 은유가 구별되도록 페이지의 색을 달리하여 디자인되었다.
03. 마케팅 / 홍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발행 직후 다수의 리뷰와 추천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등극했다. 새로운 작가가 자리매김하기 힘들다는 청소년 문학계에서 벌써 5년이 넘도록 꾸준히 읽히고 있으니 그야말로 국내 청소년 문학계의 연금복권인 것이다. 그렇다면 청소년 문학 시장에서 한 작품이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교보문고 유아·청소년 도서 MD 최지은은 출판 N에 기고한 ‘베스트셀러로 보는 청소년 책 출판 동향’에서 청소년 문학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최지은 MD의 분석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흥행 이유를 적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청소년 분야는 ‘추천도서 시장’이라, 시간을 통해 검증된 구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꾸준히 차지한다. 미디어 이슈 혹은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반짝할 수는 있지만, 순위가 유지되려면 결국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많은 독자들의 후기가 중요하다. 양질의 리뷰가 곧 책의 생명력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한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의 수상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됐다.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에 선정된 작품들은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도 발행 직후 다수의 리뷰와 추천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등극했다.
이름 있는 문학상 수상은 기관이나 학교의 추천도서 반열에 오르기 수월하기도 하다. 그 결과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2019 양주 올해의 책, 2019 안동 올해의 책, 2020 천안 올해의 책, 2021 책 읽는 청주 대표도서, 2021 포천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또『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현재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 중이며 일본, 대만, 러시아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문학동네는 이러한 이력들을 보도자료의 첫머리에 표기하여 강조하고 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공공기관 등에서 개최한 여러 공모전에서 추천작으로 올랐다. 2020청소년책의네트워크는 ucc 온라인 공모전을 열어 유튜브에 공모작을 업데이트했는데, 당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북트레일러가 우수상을 타며 1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얻기도 했다.
또 이꽃님 작가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에 이어 『죽이고 싶은 아이』(우리학교, 2021),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문학동네, 2023)도 성공시키면서 자신의 작품성을 증명하였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그로부터 청소년 문학 시장에 ‘믿고 보는 작가’가 된 이꽃님 작가의 대표작으로 남았다.
결론적으로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뛰어난 작품성이 SNS와 온라인 서점의 여론들을 계속해서 재생산시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태그수는 4000개를, 알라딘에서 작성된 리뷰는 120건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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