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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청소년문학

『파도의 아이들』 - 탈북 서사 탈출하기

by 성지_ 2024. 8. 22.

제목: 파도의 아이들

저자: 정수윤

출판사: 돌베개

발행일: 2024-06-27

 

 

『파도의 아이들』은 13년 동안 직접 탈북민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온 저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이다. 설과 여름, 광민은 저자가 만난 탈북민 아이들을 형상화한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들이 처한 모진 상황과 사연에 안타까움을 느껴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는 『파도의 아이들』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위대한 여정에 대하여,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하여, 사지로 내몰리는 젊음의 안타까움에 대하여’(「작가의 말」, 215p) 쓴 글이라고 설명한다.

 

 

1. 탈북민과 디아스포라

 

탈북을 소재로 한 청소년문학으로, 세 청소년 탈북민 설, 여름, 광민의 탈북기를 그렸다. 줄거리는 여느 탈북기를 그린 소설과 같이 인물들의 ‘탈출’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세 등장인물은 처음에 산과 강을 넘어 북한을 벗어나고 이후에는 대륙으로 연결된 여러 나라를 횡단하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위협을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북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세 인물의 모험기가 절박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렇듯 『파도의 아이들』의 줄거리는 꽤 단순한 편이다. 세 인물은 결국 한 탈북 브로커를 만나 함께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인물들이 살던 곳에서 벗어나 무언가 혹은 어딘가를 맹렬히 찾는다는 점에서 탈북 소설의 전형적인 형식인 ‘추구 서사’의 성격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도의 아이들』은 탈출 이후의 정착 과정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탈북 서사를 극복하려고 했다. 탈북을 다루는 아동청소년문학 작품들은 그동안 ‘탈북 경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탈북 이후 남한 사회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상세히 묘사하는 데 치중’해 왔다. 그러다 보니 탈북 서사는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실상과 탈북의 어려움을 폭로하는 고발 서사나 추구 서사의 형식을 관습적으로 따라가며 탈북민을 단순한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탈북민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이야기에서도 정작 그들의 진짜 모습과 목소리를 올릴 무대가 없었던 셈이다. 반면 『파도의 아이들』에서 탈북을 시도하는 설, 여름, 광민은 그들에게 주어진 탈북민의 지위를 넘어서려는 인물로 그려진다. 특히 탈북에 성공하고서도 이어지는 이들의 계속되는 ‘탈출’탈북민의 주체성, 인격체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화선, 「차이의 지정학과 사랑의 정동: 탈북을 소재로 한 아동청소년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어문연구』 제103호, 어문연구학회, 2020, 159쪽.

 

이야기의 대부분에서 지난하게 묘사되는 설, 여름, 광민의 탈북 과정과 비교되게 이들이 결론적으로 당도하는 곳이 ‘바다’라는 결말은 조금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세 인물의 탈북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남한에 정착해 행복해지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라왔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세 인물은 다시 한번 탈출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탈북에 가까스로 성공해 어느 시설에 정착하게 된 여름은 같은 탈북민 광민에게 담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는 말을 듣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곳이 바로 저 벽 너머에 있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무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라며 충격을 받는데, 이 충격은 곧 탈북민 ‘광민’, ‘설’과 함께 몰래 시설에서 탈출해 바다를 보러 향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여름은 바다로 향하며 탈북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탈피하고 실존적 주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이 확인하게 된다. “새로운 국적, 새로운 나라, 새로운 땅, 그런 것들이 내게 자유를 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건 어리석은 환상이었다. 난 그저 바다가 보고 싶었고, 바다 옆에서 살고 싶었고, 그래서 떠나왔을 뿐인데.”(206p). 설과 여름이 북한으로 귀환하는 트럭에서 뛰어내려 산속으로 사라지는 이야기의 첫머리와 설, 여름, 광민이 어딘지 모를 시설의 담을 넘어 새벽 중에 바다로 향하는 결말은 이런 의미에서 수미상관의 모양새를 띠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세 인물이 탈북에 가까스로 성공해 당도한 곳이 남한이나 다른 어느 나라가 아닌 ‘바다’라는 결말은 『파도의 아이들』이 탈북 서사를 통해 디아스포라의 삶을 그리고 있음을 확신케 해준다. 많은 부분에서 바다는 기존의 공동체를 대체해 새로운 공동체를 공평하게 포용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비친다. 여름에게 바다는 ‘공평하게 우리 모두에게 인사’하는 것이며, ‘똑같은 언어’와 ‘똑같은 뜻’(210p)이 지배하는 공동체다. 그리고 ‘강’과 ‘물과 물고기, 달과 바다’(211p)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제 모습을 감추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 바다와 하나가 되어 일렁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결론적으로 설, 여름, 광민의 ‘탈출’은 결국 그 자체로 그들의 자유로운 정체성을 의미하며, 바다기존 탈북 소설에서 탈북민의 정체성을 나타내었던 국경과 지위 같은 경계를 극복하는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이야기는 인물들이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으로부터 우리에게 새로운 연민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소설의 시작부터 이들이 감행한 대담한 탈출은 우리가 주어진 정체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과도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다는 탈북민을 향한 연민과 이해가 향하는 새로운 연대의 공간으로 읽히기도 한다. 『파도의 아이들』은 이렇듯 우리가 탈북민을 타자가 아닌 주체로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탈북민이 지닌 인격체의 뿌리를 바다로 형상화해 내며 기존 탈북 소설의 한계점을 극복하려는 시도했다는 점에서 기존 탈북 소설과 차별화된다. 등장인물들이 획득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은 우리와 탈북민이 함께 놓인 동등한 위치를 상기시키며 보다 본질적인 연민의 정서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너와 나. 물과 물고기. 달과 바다. 그 모든 게 다 하나야. 모든 게 다 이어져 있어. 바다는…… 바다는 정말로 이 세상은 있었다.” 211p

 

 

2. 다름의 미학

『파도의 아이들』은 아동청소년문학이자 탈북 소설로서 국내 사회에서 소수자인 청소년 탈북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 탈북민의 이야기를 다룬 많은 아동청소년 분야의 작품은 앞서 말했듯 ‘탈북민이 남한에 정착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모순적인 사회 체제와 인식의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동청소년문학은 탈북민뿐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청소년들을 타자화된 존재로 그리곤 한다. 예를 들어 ‘등장인물에게 욕망이 부재’하거나 ‘욕망이 있더라고 그것이 억압된 경우’다. ‘청소년의 욕망은 찾기 힘들고, 욕망이 억압된 자리에서 돋아난 증상’만 발견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북민의 남한 적응 과정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욕망은 지우고 탈북민이라는 단일 주체로 상정하는 탈북 소설 속의 위계적 사고는 문학이 소수자를 대하는 그릇된 방식과 다름없다.

 

*오세란,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사계절, 2021.

*원문: 오세란, 「청소년소설 속 아이들은, 자기 서사의 주인공이고 싶다」, 『계간 어린이와 문학』 2016년 7월호.

 

『파도의 아이들』은 아동청소년문학이 소수자의 삶을 다룰 때 나타나는 타자화의 문제를 여러 방면에서 극복하려 했다. 특히 세 인물의 시점을 교차해서 서술하는 방식에서 인물들의 개별성을 살리고자 한 의도가 엿보인다. 탈북 이전과 이후의 상황을 각 인물의 시점으로 구체적이게 묘사하는 것은 이들을 하나의 탈북민 공동체로서 뭉뚱그리는 것보다 인물들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설, 여름, 광민 세 인물은 성격, 지위, 탈북을 하게 된 계기와 목적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자진해서 탈북을 결심하는 인물인 설, 여름은 탈북 조력자인 것을 들킨 어머니 때문에 갑작스레 탈북하게 된 광민보다 더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한편, 설과 여름은 평범한 서민층의 인물이지만, 광민은 아파트에 살고 고위급 간부를 아버지로 둔 부유층으로 그려진다. 그로부터 자연스레 이들이 탈북하는 상황과 과정도 달라진다. 이렇듯 인물에게 부여된 여러 차이점은 탈북민을 집단 주체로 묘사하곤 했던 기존의 탈북 소설과는 다르게 인물에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실존적인 주체로 되돌리려는 시도로 읽힌다. 탈북을 소재로 다루는 소설에서 한국 국적의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이런 면에서 탈북인에 대한 타자화 여지를 완전히 지우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말부에 이르러 세 인물이 비로소 만나 같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은 이 다름의 아름다움이 진정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설과 여름, 광민은 각자 다른 사연과 지위, 성격, 목적을 지니고 있음에도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공유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설과 여름, 광민 이름부터 가지각색인 인물들이 어둠이 짙은 바다에 몸을 던져 한 개의 실낱같은 파랑이 되어 대양으로 멀어지는 장면은 이 다름의 미학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차별 속엔 다름이 없고 다름 속엔 차별이 없다. 우리는 이 결말에서 차이가 아닌 차별이 지배하는 지금의 사회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와 그들로 나누어져 극단으로 멀어진 우리 사회는 전례 없는 자멸을 예고하고 있다. 탈북민에 대한 따듯한 연민이 담겨 있는 『파도의 아이들』의 결말은 바다 앞에서 탈북민의 지위를 벗는 아이들에게서 유연하고 자유로운 우리 존재를 상기시키며 다름을 포용하는 사회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을 던지는 데 의미가 있다.

 


여담

1. 『파도의 아이들』의 디아스포라 서사는 기존의 탈북 소설이 가졌던 전형성을 벗어나 독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공감을 요구하게 한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장르의 정형성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완결성이 돋보인다.

 

최근 쿠바 북한 대사관 참사였던 리일규 외교관의 2023년 11월경 탈북 소식이 언론의 보도로 공개되었다. 북한 내에서 최고 계급에 해당하는 인물의 탈북 소식은 몇 년만에 처음이었기에 리일규 참사의 탈북 소식은 국내 주요 언론사가 집중 보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더불어 최근 일어난 오물 풍선과 같은 직접적인 북한의 도발과 몇 년만에 재가동한 대북확성기 소식은 북한 정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뜨겁게 달군 계기가 되었다. 대북확성기의 효과로 북한 군인들의 탈북 소식이 연이어 보도되는 지금, 청소년 탈북민의 삶을 다룬 『파도의 아이들』은 적절한 시의성을 갖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2. 많은 청소년문학의 관계자에게 추천사를 받았다. 아동청소년문학은 특히 소위 알려진 인물의 힘이 판매를 좌우할 정도로 크다. 『파도의 아이들』에 추천사를 쓴 정여울 작가와 오세란 문학평론가가 그렇다. 추천사는 표지를 감싼 넓은 띠지에 차례로 쓰여 눈에 잘 띄는 편이다. 추천사는 책의 끝머리에 「추천의 글」로 따로 실리기도 했다.

 

저자가 가진 독특한 이력이 마케팅의 수단으로 쓰였다. 저자는 일본문학의 걸출한 작품들을 여럿 옮긴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면서, 13년 동안 탈북 청소년들을 만난 탈북민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출판사는 보도자료에서 저자가 지닌 경험과 경험을 토대로 한 진실성이 소설에 녹아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출판사는 기존 탈북 소설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자체 유튜브 채널에 한 시간 가량의 저자 인터뷰를 실어 소설의 구성과 줄거리에 대한 설명을 첨부하고 있으며 보도자료에 ‘비극 속 타자가 아닌, 고유한 존엄을 지닌 자기 서사의 주인공’, ‘바깥을 사유하며, 경계 너머로 세계를 넓히는 문학’으로 홍보하고 있다.

 

 

『파도의 아이들』 저자 인터뷰, 돌베개 유튜브

 


 

액자같이 간결한 표지 디자인을 채택했다. 하얀 바탕에 세 인물을 담은 바다 그림을 앞표지 위에 위치시키되 남은 부분은 여백으로 채웠다. 뒤표지도 마찬가지로 여백에 추천사를 담고 그림을 위쪽에 위치시켰다.

 

앞표지 / 뒤표지

 

특이하게 일러스트를 포함해 앞표지 절반을 부분 코팅 처리하였다. 여백을 덮는 띠지를 씌우면 광택이 돋보이도록 디자인된 듯하다. 여백의 넓이만큼 큰 파스텔색 띠지가 표지를 덮고 있다. 간결한 표지와 다르게 은박(?) 처리된 그래픽과 텍스트가 돋보인다. 표지의 하얀 바탕과 파스텔색 띠지가 결합한 것이 바다의 지평선을 보는 듯한 시원한 느낌을 준다.

 

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