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이는 설명
민음사의 디 에센셜 시리즈는 ‘대표 소설과 에세이를 한 권에 담아, 이 책을 읽은 독자 누구든 단 한 문장으로 작가의 특징을 정의할 수 있게 큐레이션 한 시리즈’다.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는 디 에센셜의 일곱 번째 편으로, 소설 <이방인>과 3편의 에세이 <안과 겉>, <결혼>, <여름>, 그리고 김화영 번역가의 에세이 <알베르 카뮈의 ‘스웨덴 연설’>을 실었다.
그중 <안과 겉>은 알베르 카뮈의 최초작으로, 집필한 지 20년 만에 재판을 허용해 다시 출간되었다. 당시 카뮈는 <안과 겉>의 재판본에 새롭게 쓴 서문을 같이 실었고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 또한 서문이 포함된 판본을 사용했다. 우리가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에 실린 일련의 단편들을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서문이다.
카뮈는 1949년부터 책의 서문을 쓰려고 했고, 1954년에 마쳤다. 그로부터 <안과 겉>이 출간되는 것은 4년 뒤이므로 서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10년가량이 걸린 셈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0년, 카뮈는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던 중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였다. 혹자는 이 때문에 서문이 카뮈의 문학에 대한 최종 소견을 담고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서문이 과연 카뮈의 최종 소견을 담고 있는지는 이제 모를 일이지만, 확실한 것은 서문이 카뮈가 일생동안 썼던 작품들에 담긴 고유한 사색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이하게도 이 서문은 <안과 겉>의 재판을 기념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카뮈는 자신이 <안과 겉>의 재판을 20년 동안 허용하지 않았던 이유를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자신의 “마음속 가장 깊숙이 있는 주제”에 대한 서투름 때문인데, 여기서 서투름은 “그 뒤에 나온 다른 모든 책들보다 더 진정한 사랑이 담겨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뮈가 재판을 사양했던 이유는 자신의 예술적 원천에 대한 조심성 때문인 것이다. 서문은 그러한 조심성과 자신의 고유한 사유를 명확히 하기 위해 쓰였다.
다음은 그 서문 중 일부다.
“아마도 부질없어 보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 문제라면, 이제 와서 이 책을 다시 펴내도 좋다고 승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술가의 생애에는, 상황을 점검하여 자신의 중심으로 다가가서 마침내 그 중심에서 스스로를 가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오늘이야말로 그럴 때이며 그 점에 대해서 나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언어를 구축하고 신화들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그토록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가 어느 날엔가 『안과 겉』을 다시 쓰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나는 결국 아무것에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나는 노력과 창작 생활의 이십 년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나의 작품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카뮈는 <안과 겉>에서 독자적인 예술 세계의 의미를 찾는다. 이러한 사실은 단편의 모음에 불과해 보이는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에 실린 카뮈의 초기작들을 함께 읽는 데 유용한 도움을 준다. 요컨대 <안과 겉>으로 대표되는 카뮈의 초기작들은 카뮈가 작가로서 지닌 고유한 원천을 가장 날 것의 형태로 담아낸 작품들이다. <결혼>이나 <여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단편들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 예술적 샘의 원천을 찾아가고자 하는 카뮈의 삶과 사색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밑은 책의 출판에 관한 분석이다.
1. 디자인 및 내지 편집
판본은 127x188(B6)이고 반양장 제본이 사용되었다. 500쪽에 달하는 벽돌 책이지만 수평으로 갈라지는 반양장 제본의 판본 때문에 읽기 수월하다. 반면 한정판이 아닌 보급판은 무선제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민음사는 보도자료에서 디 에센셜 시리즈의 디자인성을 이미 강조하고 있다.
2020년 11월 첫 출간된 ‘디 에센셜’ 시리즈는 사진이 아닌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를 통해 고전 작가의 현대적 재현을 시도하여 큰 화제를 모았다. 민음사의 황일선 디자이너와 정중원 초상화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디 에센셜 조지 오웰』은 최근 서울국제도서전과 독일 북아트재단이 개최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공모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에 출간한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에서는 향후 「이방인」에 그 정수가 담기게 될 청년기 알베르 카뮈의 고독, 사랑, 시대에 대한 연대의 열망을 회색의 이미지 안에 담아냈다.
정교하게 재현된 작가 초상화는 사진처럼 느껴져서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단색의 디자인은 새로운 시리즈를 홍보하는데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디 에센셜은 오히려 단색이 초상화를 부각해서 전체적으로 조화롭다.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는 카뮈 특유의 냉소와 열정, 그리고 그의 부조리 사상에 어울리는 짙은 잿빛과 흰 글자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내지의 텍스트는 양옆으로 적절한 여백을 두고 있으므로 읽기 편하다. ‘디 에센셜’은 원문이 병기되는 경우를 고려해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서체를 선택했다고 한다. 클래식한 분위기인 서체가 시리즈의 콘셉트와 잘 어울린다. 작품과 작품 사이를 구분하는 면지는 흑백으로 간결하게 디자인되었고, 한 구석에 있는 작품 소개글이 몰입감을 준다.
2. 마케팅
민음사는 자사의 유튜브에서 대표적인 고전 작가들을 따로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할 만큼 세계문학전집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을 보여왔다. 그중 독보적인 호응을 받은 콘텐츠는 현시대의 고전을 대표하는 작가와 대표작을 편집자가 직접 소개하는 영상으로, 콘텐츠의 특징은 작가의 행보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읽는 방법이나 순서에 대해 안내해 준다는 것이다. 그중 알베르 카뮈나 헤르만 헤세 같이 인기 있는 작가를 소개하는 영상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조회수가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이 콘텐츠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전문가가 작가의 작품을 읽는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전문가의 큐레이션은 기존 독자들에게 작품을 재해석할 여지를 주고, 작가의 작품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춰줄 수 있다. 이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주는 "편집자의 선택" 카테고리를 홈페이지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세계문학전집과 분리된 고전 시리즈의 출현은 사전에 예고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디 에센셜’은 그러한 독자의 갈증을 충족시켜 주는 기획으로 등장했다. 디 에센셜의 큐레이션은 기존의 팬층과 잠재적 소비층을 모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중요한 전략이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토대로 형성된 단단한 고전 문학 독자층은 언제나 작품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디 에센셜 시리즈의 큐레이션은 기존에 있던 작품들을 새롭게 패키징 하면서 재해석 욕구를 잘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큐레이션은 고전 장르의 입문 독자들에게는 친절한 안내자가 된다. 민음사는 보도 자료에서 ‘디 에센셜’을 ‘이 책을 읽은 독자 누구든 단 한 문장으로 작가의 특징을 정의할 수 있게 큐레이션 한 시리즈’라 소개하며 시리즈의 큐레이션 콘셉트를 명확히 한다.
더하여 작가의 정수를 담으려 했다는 식의 ‘진정성’ 마케팅은 잠재적 독자층이 소비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에 적절하다. 예를 들어 ‘디 에센셜’ 시리즈는 그 이름에서부터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이는 시리즈가 독자로 하여금 한 작가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이다. 독자들은 이로써 시리즈가 고전 세계의 안내자로서 더욱 진정성 있는 것이라 여기게 된다.
3. 보도 자료와 출판사 서평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
—알베르 카뮈
반항하는 개인, 깨어 있는 연대, 진정한 대안인 사랑을 외친
실존하는 우리 시대 ‘청년’ 알베르 카뮈를 만나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이방인」
카뮈의 모든 작품의 출발이자 원천이 되는 첫 작품 「안과 겉」
자연과 인간의 합일 「결혼」, 지중해와 태양의 에세이 「여름」 수록!
보도자료는 서지 정보 - 책 소개 - 목차 - 편집자 리뷰 - 작가 소개순으로 쓰여있다. 띠지와 책 소개란에서 '청년'의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는 것이,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의 주제와 연관된다. 눈에 띄는 것은 김화영 역자의 이야기와 표지 이야기 정도다. 김화영 역자는 35년 만에 세 편의 에세이를 완전히 새로 번역했다고 한다. 김화영 역자는 오랫동안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번역해 온 것으로 유명하고, 더군다나 김화영 역자의 에세이까지 책에 실려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더 강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4. 총평 및 여담
한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엮은 만큼 작품 간의 통일성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디 에센셜: 알베르 카뮈>는 김화영 번역가가 처음으로 번역한 카뮈의 초기작 <안과 겉>, <결혼>, 그리고 <여름>을 재번역해 새로 엮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지막 목차는 김화영 작가의 카뮈에 대한 에세이이며, 작품과 작품 사이의 면지에는 김화영 번역가의 소개글이 있기도 하다. 이 부가적인 글들은 카뮈를 전문적으로 번역해 온 김화영 번역가의 애정과 더불어 작품에 일련의 콘셉트를 부여하려는 출판사의 시도를 나타내 주고 있다.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과 에세이 세 편을 내부적으로 연관 짓는 것은 카뮈 작품의 중심 사상인 ‘부조리’다. 에세이 세 편은 <이방인>이 집필되기 전후로 부조리에 천착해 열정적으로 써 내려간 카뮈의 기록이다. 각 작품은 그야말로 카뮈라는 인물의 초창기, 즉 카뮈의 예술적 원형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디 에센셜은 이 네 작품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듯 뒤표지에 각 작품의 집필연도를 나열하고 있다. 뒤표지와 면지에 인쇄된 문장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은 없다’를 떠올리면서 읽으면 모든 작품이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455p 또 수평선과 함께 외톨이가 된 우리. 파도는 하나하나, 참을성 있게, 눈에 보이지 않는 동쪽에서 온다. 우리 있는 데까지 왔다가는 또 참을성 있게 미지의 서쪽으로 하나하나 다시 떠나간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기나긴 전진..... 시냇물과 강물은 지나가지만 바다는 지나가고 머문다. 바로 이렇게 일편단심으로, 덧없이, 사랑해야 하리라. 나는 바다와 결혼한다.
디 에센셜 시리즈의 편집자는 시리즈 기획 후기글에서 ‘위기를 맞은 현시대를 진단하고 나아가는데 고전의 지혜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전했다. 위기라는 생각은 코로나19로 팬데믹을 맞았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지만, 출판 산업은 사실 언제나 위기 속에 있다. 고전의 힘이 다시 한 번 출판계에 바람을 불어넣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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