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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해외문학

『나를 보내지 마』 - 나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나요?

by 성지_ 2024. 4. 11.

제목: 나를 보내지 마 (Never let me go)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

역자: 김남주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9-11-20 (개정판 2021-04-09)

 

*전문이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런 독자들을 위한 책입니다.

 

민음사는 “젊고 새로운 화제작들을 정리할 장치”로서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이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세 번째 시리즈로서 첫 발행된 작품입니다.

 

“나를 보내지 마”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의 소설로,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성찰의 빛을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저자 가즈오 이시구로는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이자 2017년 노벨 문학상과 부커상의 수상자이기도 하죠. 저자만의 묵직한 메시지와 흥미로운 설정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니, “나를 보내지 마”는 모던 클래식이라는 이름에 꼭 들어맞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시구로의 작품들을 읽기 전에 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일관된 특징을 알아두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의 작품들은 “나를 보내지마”나 “클라라와 태양” 같이 근미래를 다루는 SF 장르부터 추리, 역사까지 다양하지만, 그 장르적 특성 자체는 하나같이 강한 색깔을 띠지 않고 이야기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지 마”는 분명 SF장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타 작품과 마찬가지로 SF의 장르적 재미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복제인간들의 담담한 여정은 적지 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따라서 “나를 보내지 마”는 세계 문학 전집을 즐겨 읽거나, 고전의 클래식함을 느끼고 싶은 독자, 혹은 현대 윤리를 통찰하는 성찰적인 이야기를 원하거나, 자신의 영혼을 찾아 헤매는 모든 독자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작품입니다.

 

“어째서 그런 걸 증명하셔야 했던 거죠, 에밀리 선생님?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나요?”

 

 

 

독자 리뷰

 

내 이름은 캐시 H. 서른한 살이고 11년 이상 간병사 일을 해 왔다.

“나를 보내지 마”는 SF의 장르적 장치와 재미를 절제하여 담담하고 건조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특히 소설 초반부의 ‘헤일셤’ 이야기는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에세이에 가까울 정도로 일상적인 묘사로 평범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보여준다.

 

“우리는 학교의 체육관을 참 좋아했는데, 그건 우리가 어릴 때 보던 그림책에 항상 나오던 작고 예쁜 오두막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급반 시절에 다음 수업을 교실 대신 체육관에서 하자고 교사들에게 조르던 일이 기억난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걸상과 벤치 위에 올라가 높다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 남자애들 10여 명이 축구를 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당시에는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비가 내렸던 것 같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모든 복제인간은 장기기증을 위해 복제된 존재라는 단 하나의 조건을 제외하면 진짜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한 모습으로 설정되었다. 가령 주인공 일행이 시설 밖으로 나갔을 때 만난 인간은 그들을 진짜 인간으로 착각하는 것은 복제인간들은 공산품처럼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공적으로 탄생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인간과 다르지 않게 철학과 예술을 배우며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단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하여 복제인간이란 설정을 만들어냈다. 때가 되면 자신의 원본인 인간을 위해 장기 기증자가 될 것. 이것이 인간과 다르게 복제인간에게 내려진 단 하나의 조건이자 형벌이다. 주인공 일행은 이 피할 수 없는 형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끝내 그들의 운명을 수용하게 된다.

 

저자는 이 SF 장르적 요소의 축소와 리얼리즘의 확대를 통해 본질적인 질문만을 이야기에 남겼다. 다시 말해, 『나를 보내지 마』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난 복제인간을 통해 조명하는 일종의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야기 속 사소한 설정들은 독자가 삶의 의미를 재인식하도록 하는 장치로 고안되었다. 주인공 일행이 장기 기증의 선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 헤매는 ‘영혼’의 실체가 여기에 해당한다. 주인공 일행은 ‘창의성’이나 ‘사랑’이 자신들의 영혼을 증명하는 것이라 여겼지만, 결국 그 무엇도 자신들을 인간으로 바꾸어주지는 못했다. 이렇듯 저자는 운명을 수용하는 복제인간들의 다양한 태도로부터 인간의 그것을 비추고 싶었다는 저작 의도를 비친 바 있다.

 

“내 생각에 『나를 보내지 마』가 대단한 점은 그들이 전혀 반항하지 않으며, 그들이 해주기 바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우리가 죽기 마련이고 이걸 벗어날 수 없으며 어느 시점이 지나면 우리 모두는 죽게 되고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점에 대해 분노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 점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 점에 대한 반응도 가지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보내지 마』의 인물들이 우리가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노화하고 붕괴되고 죽게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 무시무시한 프로그램에 반응을 보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소설은 복제인간 캐시의 선언 같은 자기소개를 이야기의 첫머리로 둔다. 이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곱씹게 하는 추궁이자 자신을 보내지 말라는 캐시의 경고다. 결국 이 복제인간들이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떠나는 진지한 여정은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 끊임없이 자문해야하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나는 누구인가? 작가가 줄곧 던져왔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는 일이 이 소설의 진정한 결말이리라.

 

 

편집 리뷰

 

1. 만듦새

 

구판의 표지는 시리즈의 클래식한 이미지에 가까운 모던한 디자인을 보인다. 절제된 사진과 텍스트의 배치 덕에 2009년에 발행한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련되게 느껴진다.

 

 

 

정판의 경우 원서 “Never let me go”의 표지를 모티프로 제작된듯 보인다. 표지의 일러스트는 작 중에 캐시가 듣는 노래 “Never let me go’의 테이프다. 이렇듯 표지가 제목이나 콘셉트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어 구판보다 물성의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 무엇보다 표지에 사용된 글꼴이 구판의 바탕체에서 귀여운(?) 모양으로 바뀌었는데 부드러운 질감의 일러스트와 잘 어울린다.

(개정판 앞표지)

 

 

 

2. 마케팅 / 홍보

 

출판사는 소설의 흥미로운 설정과 묵직한 메시지를 토대로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을 진지하게 성찰한 문제작”이란 문두가 눈에 띈다. “문제작”이란 현대 윤리나 도덕에 의문을 제시하는 전위적 작품 등에 숱하게 사용되는 단어다. 예비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말인 것 같다.

 

노벨 문학상이나 부커상 수상 같은 저자의 약력과 <타임> ‘100대 영문 소설’에 지정된 사실 등을 그 다음에 작성했다. 신용할 수 있는 저자의 힘이란 무시할 수 없다. 이 덕분에 저자의 또 다른 장편 소설 “클라라와 태양”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간접적인 홍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같은 장르의 대표격 영화인 ‘아일랜드’를 언급하거나 애매모호한 제목의 해설을 제공해 예비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의도도 비친다.

 

 

3. 총평

 

디자인과 기획이 책의 핵심 콘셉트를 잘 받쳐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읽기 전에 제목이 애매모호하다 생각한 나를 꾸짖는다… 읽고 보니 제목만 봐도 눈물 맺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