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합★체
저자: 박지리
출판사: 사계절
발행일: 2010-08-27
키 작은 이들이여, 합체하라!
박지리 작가의 장편소설로,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본격적인 소개를 하기 전에, 우선 제목의 표기 방식을 일러두어야 할 것 같다. 『합체』인가, 『합★체』인가? 온라인 서점에는 편의상 『합체』로 등록되어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합★체』가 맞다. 그 이유인즉슨 출판사가 제공한 신간 안내서에서 『합★체』로 칭해질 뿐만 아니라, 『합★체』의 ‘합’과 ‘체’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소년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오합’과, 오체’.
사소하면서 거대한 문제, 어떤 정체성은 바꿀 수 없다.
『합★체』에서 서사의 구심점이 되는 것은 ‘키’다. ‘신장’으로도 부르는 그것.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작은 키는 시종일관 합, 체 쌍둥이 형제를 괴롭힌다. 반 아이들에게 ‘합체하라’고 놀림당하는 것은 일상이고, 농구를 하는 체육 시간에는 작은 키 때문에 소외되기 일쑤다. ‘체’는 자기가 좋아하는 윤아 앞에서 체면을 구기는 것이 곤욕이다. 그 때문에 합, 체의 머릿속에는 온통 키 생각뿐이다. 어떻게 하면 커질 수 있을까?
70쪽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사람들은 합, 체의 아버지를 난쟁이라 불렀고, 아버지는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공을 발판 삼아 굴리고 머리 위로 던지면서 살다가, 난쟁이를 보지 못한 트럭에 치여 세상을 떴다. '남자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아버지를 친 사람은 코끼리 조련사였고, 코끼리만큼이나 큰 트럭에는 정말로 코끼리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도 참 난쟁이스러웠다.' (77쪽) 체는 이때 합과 함께 아버지의 공연을 관람하러 따라나섰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는데, 이 사건으로 체는 작은 키에 대한 트라우마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체에게 ‘키가 작다’는 것은 단순한 콤플렉스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저주’이고 ‘비정상’을 나타내는 낙인이다(그래서 합, 체 형제가 계룡산으로 떠나기 이전, 장의 첫머리에 앞의 문장이 반복되는 것은 체가 지닌 트라우마를 은연중에 나타내는 장치로 보인다).
그럼에도 합, 체는 잘 견뎌냈다. 언젠가 키가 크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체의 마음속 깊이 뿌리내린 트라우마를 터뜨리고 마는 한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난쏘공’이라는 말이 불타는 집에 부는 바람처럼 친구의 입에서 불어온 순간, 평소 같았으면 가볍게 무시해 버렸을 체가 친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뻗은 것이다. 트라우마는 체의 주먹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마치 구멍이 뚫린 풍선처럼 체는 엄마를 향해, 계도사를 향해 자신의 절망을 마구 뿜어내기 시작한다.
(『합★체』에 등장하는 합, 체의 아버지는 사회 고발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아버지 캐릭터를 모티프로 삼은 인물이다. 두 아버지 캐릭터는 모두 난쟁이고, 사람들에게 난쟁이로 불리며, 하늘 위로 공을 쏜다. 반면 <난쏘공>의 아버지가 산업화•도시화 열풍에 희생된 사회적 약자로서 사회 고발의 상징이 되는 인물이었다면, 합, 체의 아버지는 단순히 광대(?)를 업으로 삼을 뿐, 그의 죽음은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띠지 않으며 키가 작았다는 신체적 특징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보다 중요한 것은 공통점이다. 어찌 됐든 두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물려준다. <난쏘공>의 아버지는 가난을, 합과 체의 아버지는 작은 키를 남겼다. 가난에 비하면 ‘작은 키’라는 결점은 무척 사소해 보이지만, 합과 체에게는 마찬가지로 목숨이 달린 일이다.)
68쪽 그 의사 말대로라면 아무리 운동을 해도 안 클 수 있다는 거잖아. 유전이란 게 있으니까.
79쪽 “엄마도 다 알잖아. 이놈의 키. 나는 비정상이야.”
88쪽 “도사님, 작은 건요…… 불쌍한 거예요. 초라하고요, 무시당하고요, 밟히고, 깨져서 결국 죽는 거예요.” - 체
체가 이상하리만큼 키에 관해 고민하고 절망하는 이유는 친구들의 놀림이나 외모에 유난히 신경 쓰는 사춘기를 거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마음속 깊이 자리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갈등을 해결할 열쇠는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즉 난쟁이라 불리었던 아버지를 어떻게 뛰어넘느냐에 있는 것이다. 반면 체는 의사가 되어 키 커지는 약을 개발하겠다는 합과 달리 무척 단순한 접근 방법을 보여준다. 노력하면 언젠가 키가 커지리라 굳게 믿는 것. 그러나 사실 이 믿음은 체가 행했던 농구 연습 같은 현실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다소 막연하고 허무맹랑하다. 체는 티브이 연설에 등장하는 ‘체 게바라’가 자신과 같은 이름을 공유하고, 또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는 혁명가라는 이유로 그의 포스터를 방에 붙이고는 자신도 키가 커지는 혁명을 이루게 될 운명이라 생각하거나, 북쪽 약수터에 출몰한 이름 모를 계도사가 알려준 수련법(무협지에 나올 만한 것이다.)을 맹신한다. 그러고는 곧장 수련을 위해 자고 있던 ‘합’을 깨워 계룡산 깊은 곳 ‘형제동굴’로 향해 여름 방학 중 33일을 수련할 계획을 세운다. 계도사에게 전수한 수련을 33일간 완벽하게 해내서 키가 훌쩍 커지기만 하면 자기를 둘러싼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식이다.
104쪽 “한 명도 없었지. 그런데 도사님은 키가 클 수 있다고 말했단 말이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주었다고. 그러면 겉모습이 도사든, 노숙자든, 사기꾼이든 하느님이 보내 주신 전령이라고 믿어도 되는 거 아니야?”
47쪽 “빨갱이새끼.” / 이번에는 박명호의 짝과 체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체는 하마터면 박명호의 뒤통수를 확 갈겨 줄 뻔했다. 이 자식아, 빨갱이만 혁명하는 거 아니라잖아. 분리수거도 혁명이고 공부하는 것도 혁명이라잖아. 니 눈에는 저 별이 안 보이냐.
그러나 어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산다고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체 게바라를 형으로 삼고, 산속에서 아무리 수련한다고 해도 마법처럼 키가 커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금세 20일이 지나고, 키가 아닌 의심이 자라기 시작할 무렵, 합과 체는 집에서 가져온 라디오에서 우연히 계도사의 진실을 듣게 된다. 할아버지는 마법사도, 계도사도 아니었다. 그의 정체는 단순히 집을 가출한 치매 할아버지.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할아버지를 찾아간 주민이 되레 그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황당한 사연이 라디오 방송국에 소개된 것이다. 한동안 의심과 믿음 사이를 오가던 체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집을 떠나왔을 때처럼 곧바로 합의 손을 이끌고 하산한다. 자, 엄마에게도 큰소리 뻥뻥 치고 가출을 감행했지만, 방학 동안 달라진 점은 아무것도 없다. 그토록 바라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농구 시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절망적인 사실 뿐. 소년이여, 어떻게 할 것인가?
『합★체』가 말하는 아주 작은 성장 - '합, 체, 합, 체'
유년기가 지나고 타인을 인식하는 나이가 되면, 아이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 공동체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학교는 사회 공동체에 아이가 녹아들 수 있는 규칙을 가르치는 대표적인 기구이면서, 동시에 아이가 진지한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첫 사회다.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자기의 모습 중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얻어야 할지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분열, 갈등은 숙명적이다.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물구덩이처럼, 바람과는 다르게 자신의 어떤 모습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어른으로 자라야 한다. 누군가는 애써 억누르고, 누군가는 과장되게 드러내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으며 어른이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있다. 『합★체』는 두 소년이 이 운명적인 갈림길에서 분투하며 성장하는 한 계절, 우리가 모두 겪었던 그 시절을 그린 이야기다.
사실 성장의 비법은 아버지와 어머니, 계도사, 선생님, 어른들의 입에서 합, 체에게 여러 번 전해졌다. 합, 체가 계룡산에 오르기도 전에 말이다. 다만 합, 체에게는 당장 키가 커지는 것이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 때문에, 매번 그 진의를 듣지 못한다.
64쪽 “가장 좋은 공이 어떤 공인데요?” / 아버지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 “한 이 정도? 너무 커서도, 너무 작아서도 안 돼. 두 손에 딱 잡힐 만큼의 크기, 그게 좋은 공이지. 물론 어깨는 조금 많이 벌려도 좋아. 하지만 자기 두 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공이거나 아니면 두 손을 쓸 필요도 없이 한 손에 움큼 들어오는 공은 그다지 좋은 공이 아니란다. 무게도 마찬가지야. 너무 무거워서도, 너무 가벼워서도 안 돼. 공을 들었을 때 내가 이 공을 들고 있구나, 하는 느낌, 그 정도의 느낌이 이상적인 무게지. 그 공을 드느라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면 절대 좋은 공이라고 할 수 없고, 또 반대로 공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그래서 잃어버려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공이라면 그것 역시 안 좋은 공이야.”
65쪽 “그러나 합, 체야, 좋은 공이 가져야 할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다, 바로 공의 탄력도란다.”… “쇠공이나 유리공 같은 건 아무리 강하고 예뻐도 절대 좋은 공이 될 수 없는 거지. 걔네들은 쏘기도 어렵지만 일단 쏴도 다시 튀어 오르지 않고 땅에 박히거나 깨져 버리니까. 벽에 부딪혀도 거기서 더 힘을 얻어 다시 힘차게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인 탄력도, 이게 좋은 공이 가져야 할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거란다.” - 아버지
40쪽 “합, 체, 니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노는 이런 공 말고, 너희들의 공을 찾아야 해. 너희만의 진짜 공.”
53쪽 “엄마가 생각하기엔, 한 번밖에 안 본 왕자님이랑 결혼하는 건 너무 이상해. 성에서 사는 것도 너무 지루할 것 같고. 엄마가 백설공주였다면 난쟁이들 중 한 명이랑 결혼해서 광산 탐험도 하고, 숲 속으로 소풍도 가면서 재미있게 살았을 거야.” - 어머니(프린스차밍 캐릭터를 거부하면서 주제가 소수자성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88쪽 “비록 니가 그 개미 한 마리를 당장 죽일 수는 있다고 하나, 개미 세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지 않느냐. 오히려 이 개미의 죽음이 전해지고 전해지면 개미들은 더 강한 방어 체계를 만들 것이고 더 힘을 기를 것이다. 멀리 보면 그렇게 해서 개미들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 계룡산 도사
『합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다시 튀어 오르면 된다’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공을 하늘로 쏘아 올렸던 아버지가 유리공, 쇠공과 고무공에 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부분은 계룡산 수련으로 시작해 농구 시합으로 끝나는 이야기의 기묘한 구성과 오버랩된다. ‘탄력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말과 반대로 체는 난쟁이여도 ‘큰 공을 쏘아올리고’(82쪽) 싶다. 그러나 계도사에게 들은 비기는 유리공이었다. 힘차게 날아가지만, 땅에 박혀서 깨져버리고 마는. 체가 그토록 동경했던 체 게바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체 게바라는 쿠바의 ‘혁명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아프리카 콩고와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서 자신이 주도한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어쩌면 체 게바라의 삶이 체가 계룡산에서 겪게 될 처참한 실패를 이미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앞표지에 ‘체’로 보이는 소년이 체 게바라가 그려진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러나 체 게바라가 여전히 혁명의 상징으로 남아있듯이, 계룡산 수련이 체에게 마냥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체가 합과 함께 계룡산으로 떠날 때 어머니에게 예고한 것처럼 ‘깜짝 놀랄 모습’으로 변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합과 함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합, 체의 방학이 끝난 직후 시작된 농구 게임에 이르러서야 드러난다. 결말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농구 장면은 합, 체의 현실이 계룡산을 떠나기 전과 같다는 사실을 직시시키며 시작한다. 합, 체와 같은 팀이 된 팀원들의 한숨. 팀의 분위기는 이미 졌다는 듯 암울하다. 게임을 시작하고 당연한듯이 합, 체 팀의 부진이 이어지다, 꾸준히 삼점 슛 연습을 해왔던 체의 활약으로 분위기는 일약 고조된다. 어느덧 점수는 1점 차이. 그러나 마지막 슛 기회는 하필이면 공부밖에 모르는 체육 부진아 합에게 주어지고, 합의 리바운드에 게임의 운명이 달린 절체절명의 상황. 체가 합을 향해 “빨리,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르니까, 빨리.”라며 소리 지른 그때, 합이 마침내 골대를 향해 공을 쏘아 올린 순간, 계룡산에서의 훈련 덕분이었을까? 공이 그물을 무사히 통과하며 이윽고 합, 체의 팀이 승리를 거머쥔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공은 다시 튀어 올랐다.
합, 체는 아주 작은 성장을 이루었다. 키가 훌쩍 커져서 반 아이들에게 선망의 시선을 받거나, 슈퍼 모델이 되는 등의 마법 같은 것이 아니라, 합이 쏘아올린 공으로 농구 시합에서 이기거나, 체가 윤아 옆에 서기 위해 ‘반에서 가장 키 작은 남자’를 자처하게 된 것이 계룡산 수련에서 얻은 성과의 전부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장의 과정에서 합, 체가 ‘자기만의 진짜 공’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체는 합 덕분에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난쏘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합은 체와 함께한 수련 덕분에 부진하던 체육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합, 체는 서로에게 각각 알맞은 공이 되어주었던 셈이다. 난쟁이였던 아버지가 몸집보다 큰 공을 굴리며 가장 높은 곳에 섰던 것처럼, 합, 체는 서로의 공이 되어, 말 그대로 ‘합체’하여 아주 조금이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는 합, 체가 이룩한 아주 작은 성장이 ‘마법 같은 일’의 밑거름이 되리라 예고한다. 합, 체의 교복 바지는 어느새 발목까지 짧아져 있었다.
180쪽 “그게 뭐 자랑이라고. 아버지 피를 물려받았으면 본능적으로 공을 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난쏘공이라잖아. 난쏘공.” / 합이 입을 삐죽 내밀고 구시렁댔다. / “공 얘기 하는 거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220쪽 체는 합의 발등을 꾹 밟으며 얼른 맨 앞자리에 가서 섰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던 윤아가 곧 체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 “어? 체 너도 맨 앞에 섰네?” / 얼굴이 붉어진 체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우물우물거렸다. / 어, 합이…… 합이 방학 동안 나보다 1센티미터나 더 커 버려서…….” / 합이 푸, 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자 체는 한 번 더 발등을 꾹 짓이겨 주었다. 반에서 가장 작은 남자, 그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스스로 떠안게 될 줄이야.
223쪽 합은 온갖 잡념들을 호흡에 실어 밖으로 내보내며 더 묵직하게 합, 합, 합,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체, 체, 체.”
[피식한 문장들]
43쪽 체는 체 게바라의 사진을 정성스럽게 코팅까지 한 후 책상 벽에 탁 붙였다. 그리고 불러 보았다. 형! 체 게바라 형! 친근하게 부를 때는 그냥 게바라 형이라고도 했다. 게바라 형!
184쪽 “뭐, 씨발?” / “…….” / 체는 할 수만 있다면 그 씨발을 사발쯤으로 고치고 싶었다. 그러나 뱉은 말을 주워 담기엔 이미 늦어 버렸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체를 노려보던 합은 아무 말 않고 동굴로 휙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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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징
『합★체』는 박지리 작가의 처녀작이자,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010 책따세 겨울방학 추천도서, 학교도서관저널 도서추천위원회 추천도서 등 외부/전문기관의 추천도서로 여러 번 선정되었다. 박지리 작가는 본디 소설 쓰기를 본업으로 삼지 않았다가, 우연히 쓰게 된 소설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박지리 작가는 생전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청소년문학을 시도해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사후에는 청소년문학의 선구자로 조명받았다. 출간한지 14년이 지난 『합★체』는 여전히 적지 않은 판매고를 올리며 박지리 작가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합★체』는 명랑, 성장, 무협 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가 골고루 섞여서 쓰인 작품이다. ‘신비한 모습’을 한 ‘도사’의 등장은 마치 무협 소설의 등장인물과 닮았고, 합,체 형제가 계룡산에서 수련하며 상황을 유쾌하게 끌고 가는 흐름은 명랑 소설의 그것과 닮았다. 하지만 인물들을 이끌어가는 주축은 (물리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형제의 욕구다. 여타 소재는 형제의 성장 욕구를 중심으로 잘 버무려지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게 조절하는 데 쓰였다. 대표적인 사회 고발 소설 <난쏘공>을 모티프로 삼은 청소년소설이라는 점도 무척 인상에 남는다.
2. 만듦새
신국판에 가까운 145*225mm 판형. 평균보다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다(합-체가 합체한 모습을 담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닐까?). 반양장 제본이며, 어른들을 위한 양장 제본 버전도 판매하고 있다.
앞표지의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유는, 합과 체를 가르며 붉게 빛나는 저 별 때문이다. 다소 거친 붓글씨로 쓰인 ‘합’과 ‘체’ 사이에 난데없이 끼어든 붉은 별은 마치 제목을 이어서 읽지 말고 두 음절로 띄엄띄엄 발음하라 일러두는 것 같다. ‘합, 체, 합, 체’ 이렇게.
책을 읽었다면 이 두 글자가 제목 밑 공백을 가득 채운 두 소년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붉은 티셔츠를 입고 다른 소년의 어깨에 탄 채 공을 향해 손을 뻗는 소년 ‘체’, 그리고 체에게 짓눌러지면서 그를 단단히 붙잡아 들어 올리고 있는 ‘합’. 합, 체 형제가 진정으로 합체한 모습이다. 나에게는 두 소년이 힘을 합쳐 공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이 마치 소설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미리 말해 주는 것 같다. 키가 작은 것이 문제라면, 이렇게 합체하면 될 노릇 아니겠는가?
뒤표지를 장식한 여러 감상평은 예상컨대 『합★체』에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안겨준 심사위원들이 쓴 것 같다. 왜 수많은 청소년문학 중 『합★체』가 선정되었는지를 공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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