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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인문교양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 등잔 밑의 고고학

by 성지_ 2024. 7. 11.

제목: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

저자: 강인욱

출판사: 김영사

발행일: 2024-06-25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은 우리에게 고고학 커뮤니케이터로 익숙한 강인욱 교수가 집필한 일종의 ‘고고학 개론서’다. 강인욱 교수는 국내에 마땅한 고고학 대중서가 없다고 생각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저자의 말처럼 작년 집필한 책인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은 고고학 중심의 인류 문명사 풀이에 가까웠지만,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은 고고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소개하는 교양서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고고학 개론서’의 출간은 최근 인기를 끄는 지식•교양 콘텐츠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저자인 강인욱 교수는 ‘고고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여러 단행본의 출간과 더불어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 각종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고고학을 알려왔다. 이번 달 10일에는 강인욱 교수가 출연한 지식 채널 ‘보다’의 시리즈 ‘역사를 보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렇듯 고조되는 지식•교양 콘텐츠의 수요에 따라 강인욱 교수와 같이 일반인과 전문가 사이를 잇는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은 거듭 강조되고 있다.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은 이러한 흐름의 한 줄기로서 고고학을 대중화하는 시도 중 그 처음이다.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졌던 것은 거칠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러프그로스지 재질의 표지. 고고학의 이미지에 걸맞게 날 것의 느낌을 주는 표지를 사용한 게 아닐까 싶다. 분량은 336면으로 꽤 두꺼운 편에 속한다.

 

표지에는 도시와 도시의 지층 한 꺼풀 밑의 유물들이 평면적인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고학 개론서라는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고고학과 일상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앞표지의 그림은 책등까지 이어진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모습을 보면 그림의 초원 부분이 눈에 띈다.

 

고고학 개론서를 표방하는 만큼, 책은 고고학의 역사와 학제적 정의를 간단히 포함하며 유물 발굴과 보존, 고고학을 둘러싼 사회 이슈와 전망을 진단하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유물과 유적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인문 교양 분야의 고고학 서적과 다르게, ‘고고학자’라는 직업의 활동 반경, 강의실 - 발굴 현장 - 연구자의 방 - 박물관 - 세계의 문화재 현장 등을 비추며 현장의 생생함과 함께 고고학의 전방위를 밀도있게 담아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고뇌와 성찰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은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고고학이란 학문이 우리의 삶과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전달해 주는 책이다.

 

 

 

 

 

#1 자나 깨나 토기 사랑

 

고고학이라고 하면 인디아나 존스나 미이라 같은 영화가 먼저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고고학 하면 어딘가 숨어 있을 미스터리와 황금 보물이 떠오르는 것 같다. 아니면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모래 놀이터에서 어릴 적에 열심히 모래를 팠던 기억, 군대 복무할 때 경기도 최전방의 산을 모조리 파헤쳤던 기억. 이 많은 기억 중에 유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나처럼 고고학 하면 ‘화려한 황금’을 생각하는 흔한 오류를 짚으면서, ‘대부분의 고고학자는 토기를 만지며 일생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그렇다. 이 대목에서 보이듯이 저자는 토기 조각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서술하면서 그의 토기에 대한 애착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어떤 면에선 학자로서의 광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만큼 토기와 고고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저자가 고고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발굴장을 찾아갔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이 ‘고무장갑을 끼고 갓 발굴해 온 토기를 칫솔로 문질러 닦는 일’이었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토기는 흙으로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평생 만들고 깨서 버리는 토기만 한 무더기라고 한다. 그 때문에 토기는 묻혀있는 양도 많을뿐더러 ‘휴대전화처럼 시간에 따른 변화를 민감하게 반응’한다. 역사가 20년 채 되지 않은 휴대전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해온 것처럼 토기의 탈바꿈도 시대와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 저자를 포함한 고고학자들이 유물의 발굴을 위해 지표조사를 실시할 때도 대부분 ‘토기 편(조각)’을 토대로 유물의 위치를 유추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겉으로 보기에 구분할 수도 없는 토기에 저자가 드러내 보이는 사랑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고고학자가 마법처럼 현장에서 바로 토기의 제작 연대와 국가를 분류할 수 있는 것도 토기에서 나타나는 형식의 차이에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백제 토기는 대체로 유윳빛이 많으며 무른 편’이고, ‘신라 토기는 어두운 바탕에 아주 단단하다’는 식이다. 특이하게 우리에게 익숙한 ‘빗살문’은 한국뿐 아니라 유럽, 시베리아, 아메리카 신대륙에서도 등장한 보편적인 현상이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고고학자에게 토기란 그야말로 ‘고고학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황금 보물이 실은 흙으로 빚어진 그릇 조각인 것과 마찬가지다. 토기 편을 찾아내 발굴 현장을 정하고, 발굴한 뒤 세척하고 깨진 것을 조립하고 분류하고…… 토기 이야기는 책의 어디서나 끝없이 이어진다.

 

 

#2 신비를 품은 발굴 현장

 

같이 석기 주우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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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공화국에 발굴 작업을 하러 갔을 때 구석기 전공자가 저자를 부추기며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랑이 꽃피는 영화 속 한 장면 같지만, 실상은 ‘고고학 발굴 작업 중에서도 가장 중노동으로 꼽히는 작업’인 구석기 발굴 현장. 구석기 전공자와 저자는 그렇게 석기를 주우러 함께 반사막 지역으로 떠났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석기를 계속해서 주운 탓에 배낭이 무거워져 저자는 결국 “여기서 10만 년 이상 놓여 있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 아닌가”라며 하나라도 더 가져가려는 구석기 전공자를 만류했다는 결말.

 

저자는 이렇듯 책에서 고고학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고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위 상황을 본다면 적어도 ‘인디아나 존스’에서나 보았던 고고한 현장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래바람과 풍토병, 모기를 비롯한 벌레들이 우글대는 현장에서 ‘강물에 빨래하고 도끼로 장작을 패는 광경’이 펼쳐진다.’ 게다가 유물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감탄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보존 처리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고고학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전쟁통의 의무병으로 빗대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느 것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의 가장 신비스러운 일면은 현장 속에 있다. 한국은 나라 전체가 유적지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많은 유물이 땅속에 묻혀있다. 그러나 언뜻 보면 평범한 그릇처럼 보이는 유물도 고고학자와 마주하려면 백 만년이 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동하는 땅과 지하수, 바람의 이동과 파괴를 견뎌내야만 한다. 우연 중 우연의 산물, 광막한 시간의 극히 작은 일부분만이 현장에서 발견되는 셈인데, 이런 과거 인류와 문명의 흔적이 고고학자의 호미와 몇 가지 장비만으로 발견되는 이 현장이 신비롭지 않은가?

 

 

#3 고고학의 의미

 

‘고고考古’, ‘옛것을 생각’하는 정신이란 현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과 다름없다. 유물을 캐내는 행위는 고고학의 시작에 불과하다. 고고학자는 흙 속에 묻혀있던 유물을 역사와 질서로 편입시키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정신을 봉합한다. 토기 조각에 이름과 연대를 부여하는 고고학의 최종장은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이자 시간을 거슬러 인류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과거의 목소리가 현재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국제 정치의 흐름에서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한때 한국의 벼농사는 일본에서 기원한 것이라 주장되었고, 이 주장은 ‘한국 사람은 벼농사도 제대로 못 짓던 ‘미개한 사람이라는 방증으로 이용될 법’했다. 그러나 여주 흔암리의 한 집터에서 물체질로 발견한 쌀 한 톨은 벼농사의 기원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증거가 되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쌀 한 톨의 발견이 역사의 흐름과 국가의 정체성을 좌지우지한 셈이다. 흔암리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고고학은 진실을 탐구하는 길과 같다. 고고학자에게 요구되는 객관성이란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 중대함 때문에 고고학은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왔지만, 그럼에도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과 같이 문화재를 비롯한 고고학의 성과는 외부의 위협에 파괴되거나 손실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방화범이 범행에 앞서 문화재를 훼손한 이력이 있다는 것에서 문화재의 관리 미흡이 지적받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물리적인 파괴와 더불어 고고학의 가치와 성취를 등한시하는 일각의 시선에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자국의 역사와 문화재를 치켜세우면서도 유물 발굴의 기회는 축소시키는 것이다. 끝없이 쌓아 올려지는 아파트 뒤로 사라지는 시간들. 고고학을 둘러싼 이슈들은 결국 고고학에 관한 인식 부족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고고학 개론서'인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의 출간은 고고학의 인식 향상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