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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얘기

독립출판은 여기에 없는 것을 쓴다.

by 성지_ 2024. 4. 16.
『너는 나의 불안을 이해해줄까』- 김진주

 

『너는 나의 불안을 이해해줄까』는 작가가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쓴 기행문이고, 자가출판플랫폼을 통해 발행된 독립출판물이다. 그래서인지 ISBN이 없다. 바코드가 없길래 ISBN을 찾아봤는데 전자출판물로만 등록되어 있었다. ISBN이 없는 책은 독립 서점에서만 판매할 수 있다. 

 

나는 학교 후배이기 때문에 이 독립출판물의 출판 소식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만의 고유번호가 없는 책은 대형 온라인•오프라인 서점에 진열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독자들에게 우연히라도 발견되길 기대하기조차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독립출판물의 매력은 어디엔가 어렴풋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턱이 없으니 독립출판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인 걸까?

 

책을 탈세속적인 것으로 신성화하려는 사회적 관습에 익숙한 우리와는 반대로, 도서 시장은 항상 철저한 시장의 순리대로 작동해 왔음을 떠올린다. 국내 도서 시장의 황금알 낳는 거위가 자기계발서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공한 인생을 향한 독자들의 열망과 그 욕망에 부응하는듯한 마케팅 방식은 자기계발서를 부동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이런 흐름은 자기계발서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어떤 강제에 의해 억제되지 않는 이상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출판 종사자의 노동 환경이 열악한 나머지, 출판 커뮤니티에는 편집자로서 살아남으려면 지속적인 수요가 존재하는 참고서나 교과서를 주로 발행하는 교육계 출판사로 취업하라는 목소리가 게시판을 매울 정도다(이마저도 읽을 독자가 사라지는 판국이지만). 창의 산업은 대게 변덕적인 소비자를 가지고 있고, 그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기 힘들다. 반면 참고서나 교과서, 자기계발서는 가시적이고 꾸준한 수요가 반드시 존재하므로 상대적으로 비대한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책의 세속화는 이렇게 출판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창의 산업의 불안정성, 그리고 관행적으로 굳어진 성공 공식이 맞물려 확대 지속되고 있는 판국이다. 출판 산업은 그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사양산업이라는 비극적인 키워드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그에 적절한 세속적 메커니즘을 갖춘 지 오래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흥미로운 의견도 있음은 분명하다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유유)는 책이 '지금 여기에 없는 필요를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책이 먼저 쓰이고 그 책을 읽은 독자가 "이런 책을 읽고 싶었던 거야!"라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진짜 순서가 아닐까요. 

 

 

독자로서 생각해 보면, 서점을 찾는 것이 애초에 사고 싶었던 책을 사기보다는, 어쩐지 매대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 있을 것만 같아서이기도 하다. 독립출판물의 의미는 이런 관점에서 또렷해진다. 소위 '팔리는 책'을 만들고자 하는 출판계의 주류와는 동떨어진, 말 그대로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원리에서 독립된 상품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문제점은 사람들의 눈에 띄기 힘들다는 것. 그것뿐이다.

 

나는 그런 관점에 부합했던, 나 자신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던 책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독립출판물인 『서울특별시 취업안되구 무슨수로82』는 나에게 조금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은 예비 출판편집인들의 처절한 취업기를 얘기하는 에세이로, 취업을 막 준비하기 시작한 참으로 막막한 시기에 만나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읽는 사람이 극소수에 그치는 이런 독립출판물은 역시 '팔리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 예비출판편집인이 아닌 이상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역시 독립출판 때문이다. 독립출판은 출판시장에 다양성과 혁신적 요소를 더함으로써 그 활기를 되찾아주는 하나의 가능성임에 틀림없다.

 

 

『서울특별시 취업안되구 무슨수로82』- 책 만드는 조무래기, 도서출판 늴리리

 

또 독립출판은 이런 아마추어 작가들이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 기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독자로서 이 독립출판물을 통해 보다 다양한 매력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책들은 모두 아마추어의 작품으로,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책과는 비교되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아마추어의 예술성은 전문 작가와는 구분되어 재고해보아야 할 독립출판물의 특성 중 하나다.

 

인디펍은 그런 독립출판물이 가지는 상업성과 독립성의 교묘한 줄다리기를 가능케 해주는 독립출판 플랫폼 중 하나다. 플랫폼은 아마추어 작가들과 잠재적 독자를 잇는 창으로서 기능한다. 독자는 대형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과 똑같이 인디펍에 접속하여 마음에 드는 독립출판물을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다. 인디펍은 또한 동네 서점이나 독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일종의 독립출판물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독자가 독립출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서포터즈 또한 커뮤니티 구성의 일환이다. 이러한 외부 네트워크는 독립출판 플랫폼 인디펍이 상업성과 독립성의 균형을 맞추는 독립출판 생태계의 중요한 중재자로서 기능하게 해주고 있다.

 

인디펍 홈페이지 도서 추천란

 

독립출판물은 그 희소성 때문에 소장 욕구를 더욱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대중서 또한 '하나뿐인 책'이라는 의미에서 그 판형을 독특하게 제작하곤 한다는 점에서 독립출판물은 대중서보다 특별한 책이 될 수 있다. 나는 아직 나에게 우연히 온 이 독립출판물들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취업안되구 무슨수로82』가 위로였다면, 『너는 나의 불안을 이해해줄까』는 같은 과 선배의 책으로서 출판인이 되고자 하는 영감을 주었던 책 중 하나다. 책장에 꽂힌 책 중에 유난히 알록달록한 책등은 여전히 나에게 그때의 향수를 가져다준다.